[첨단의 끝을 찾아서] 박병곤 대형망원경 사업단장
지구 최대 망원경 프로젝트 참여
구경 25.4m, 허블 망원경 10배 성능
400㎞ 밖 동전까지 알아볼 수 있어
GMT 예정보다 늦어져 2030년 완성
외계 행성·생명체 단서 포착할 수도
대형 망원경 없으면 눈 감고 보는 것 같아
- GMT는 어떤 망원경인가.
- “인류가 도전하고 있는 차세대 초거대 반사망원경 중 하나다. 지름 8.4m, 두께 40㎝, 무게 20t에 이르는 오목거울 7장을 모은, 주경 25.4m의 반사망원경이다. 가시광선뿐 아니라 근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주경 2.4m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분해능이 10배 뛰어나다. 분해능이란, 쉽게 말하자면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불빛이 멀리서 보면 하나로 보이는데, 그걸 둘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반사망원경에 쓰는 오목거울의 현실적 한계가 8.4m다. 거울을 만든 뒤 최소 폭이 10m 이상인 무진동 차량에 싣고 도로를 지나 천문대가 있는 산꼭대기까지 가야 한다. ”
- 뭘 보기 위한 건가.
- “연구주제가 뭐냐는 것과 같은 얘기다. 허블 망원경으로 본 가장 먼 우주가 100억 광년이다. 이런 우주를 봤다는 것은 100억 년 전 우주를 봤다는 거다. 우리가 추정하는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다. 빅뱅 이후 우주 최초로 별이 생긴 시점이 2억 년쯤 지나서다. 그럼 적어도 135억 광년을 봐야 우주 최초의 별을 볼 수 있는 거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100억 광년을 봤다면,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그보다 더 먼 우주에 있는 ‘최초의 별’(First Star)을 관측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외계행성과 외계생명체를 찾는 임무도 있다. 지름 1m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그간 수많은 외계행성을 발견했는데, GMT는 외계행성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까지 분석해낼 수 있다. 가시광선 초정밀 분광기와 근적외선 고분산 분광기가 그 역할을 한다. 분광기는 빛을 파장별로 퍼뜨려 스펙트럼을 만드는데, 특정 부분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빛이 없는 부분이 있다. 관측 대상의 원소들이 빛을 흡수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수소·산소·탄소 등 모든 원소는 에너지를 깎아 먹는, 즉 흡수하는 고유의 위치가 있다. 스펙트럼의 어느 위치가 새까맣게 됐는지를 보면 그에 맞는 원소와 분자까지 알아낼 수 있다. 즉 어느 행성에 탄소나 메탄·물과 같은 것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생물이 있다는 직접적 증거를 찾을 수 있다.”
- 왜 별을 보나. 인류에 무엇이 유익한가.
- “천문학을 왜 하느냐와 비슷한 말이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과학을 발전시켜온 원동력이 호기심, 즉 미지의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그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잘 알기 위해서 하는 거다. 그것이 수많은 과학기술과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필름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하는 디지털카메라의 촬상소자(CCD)는 우주망원경에서 출발한 거다. 전파망원경에 사용한 자기공명 기술은 이후 병원의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진화했다.”
- GMT를 국내 최대 보현산천문대의 망원경하고 비교하면 어떤가
- “1996년에 만든 보현산천문대의 반사망원경은 1만원권 지폐 뒷면을 장식할 정도로 한국의 자랑이지만, 구경이 1.8m에 불과하다. GMT는 구경만 10배 이상이고 분해능은 14배, 집광력(빛을 모아 더 밝게 보이게 하는 힘)은 200배에 달한다.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이 인근 영천시의 100원짜리 동전을 식별할 정도라면, GMT는 400㎞ 밖 금강산에 떨어진 동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 국내에선 보현산 이후 더 큰 망원경을 왜 안 만드나.
- “한국은 천문관측 환경이 좋지 못하다. 최적지인 보현산만 하더라도 맑은 날이 연중 150일이 넘지 않는다. 별의 상(像)도 선명하지 못하다. 별은 한 점으로 보여야 하는데 대기 환경 때문에 흐릿하게 퍼져 보인다. 빛공해도 계속 커지고 있다. 도시 불빛도 점점 밝아지지만 동해 오징어잡이 배 불빛이 굉장히 세다. 하와이 마우나케아나 칠레 라스 캄파나스는 대기가 건조하고 안정돼 있다. 날씨도 연중 300일 이상 맑아 강수량이 1㎜밖에 안 되는 사막 같은 곳이다.”
- GMT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보현산천문대를 준공하고 나서 보니 일본조차도 오래전에 1.88m 구경 천체망원경이 있었고, 1996년에는 이미 8m 망원경을 건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에 엄청나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관측에서 제대로 된 망원경이 없다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8m 망원경으로는 우리 은하 안의 별을 보는 정도의 수준이다. 경쟁 자체가 안 된다. 우리나라도 대형 망원경을 확보하는 것이 대한민국 천문학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술만으로는 그런 망원경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게 GMT다.”
- GMT는 언제 완성되나.
- “프로젝트 시작은 2004년,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참여했다. 당시엔 2019년이면 완공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첨단 기술의 대형프로젝트는 도중에 난관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지금 추정하기에는 2030년이 돼야 완공이 될 수 있다. 지상에서 우주를 관측하자면 대기권의 공기가 별빛을 왜곡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적응광학, 즉 대기교란을 상쇄하는 기술이다. 거울 한 장 표면 뒤에 피스톤이 700개가 붙어서 흔들리는 공기를 통과한 빛의 광파면에 맞춰 거울 표면을 반대로 왜곡시킨다. 1초에 1000번 정도 피스톤이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쉽지 않은 기술이다. 이런 게 구현돼야 우주망원경처럼 심우주를 제대로 관측할 수 있다. 우주망원경은 공기가 없는 우주에 있어 훨씬 더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지만,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천문연은 GMT 프로젝트의 지분 10% 확보를 목표로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터무니 없는 상상, 50년 뒤 현실 되기도
- 지상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은 뭐가 다르나
- “우주에서 오는 빛(전자기파) 중에는 감마선·X선, 원적외선 등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지구 대기권에 가로막혀서 지상까지 오지 못한다. 이럴 때 각 파장에 맞는 우주망원경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이 별빛이라면 가시광선만 생각하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전체 전자기파 대역의 극히 일부다. 우주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걷다가 부딪힐 수 있는 장애물 같은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 블랙홀이다. 블랙홀이 주위의 물질을 빨아들일 때 이 물질이 굉장히 큰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에너지가 X선이다. 찬드라X선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면 블랙홀의 존재를 알 수 있다.”
- 천체 사진을 보면 총천연색이다. 별의 색깔이 있나.
- “허블 우주망원경 등 광학망원경으로 찍은 천체 사진의 색깔은 진짜다. 다만 사진을 찍을 때 여러 개의 필터를 이용해 빛의 3원색인 빨강(R)·녹색(G)·파랑(B)을 각각 따로 찍은 뒤에 합치는 거다. R·G·B를 따로 찍어야 정확하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X선이나 자외선 등 가시광선 바깥의 파장을 찍은 천체망원경 사진의 색은 가짜다. 어차피 사람 눈이 감지할 수 있는 색이 아니니, 비교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임의로 색을 입힌다. 물론 그 속에도 원칙은 있다.”
- 50년, 100년 뒤의 관측 천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 “지금 내가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50년 뒤엔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에 지름 100m짜리 망원경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지구 여러 곳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지름만 한 전파망원경의 효과를 만들어 블랙홀 영상을 찍지 않았나. 지구와 달의 망원경을 이어 지름 38만㎞의 전파망원경을 만들면 상상도 못 할 천체를 찍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거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인 달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이 진행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135억년 전 암흑 속에 무슨 일이…우주 최초의 별 보게 될 것”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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