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수박풀(학명 Hibiscus trionum) 꽃잎을 양쪽에서 잡아당겼다. 꽃잎의 붉은색 부위 표면에 주사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매우 미세한 잔무늬 형태 주름은 빛을 받으면서 무지개색을 띠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수분 매개충을 유혹하는 경쟁에서 어떤 식물들은 특수한 방법을 사용한다. 꽃잎의 특정 부위에 줄무늬 형태의 무수한 주름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주름은 나비나 벌꿀이 좋아하는 무지개색을 띤다.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식물과학부 연구진은 “꽃잎의 일부 표면에 특수한 줄무늬가 있는 식물은 꽃잎 세포층이 물리적 힘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은 14일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개재됐다.
꽃봉오리 단계에서 기억된 주름 무늬
수박풀 꽃잎은 흰색이지만 꽃받침과 가까운 근위부는 붉은색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파랑, 노랑, 녹색 등 무지개색을 띤다. 이 효과는 CD(컴팩트 디스크)나 비눗방울 표면에서 무지개색이 보이는 빛의 회절 현상이다. 식물이 이런 패턴을 발달시킨 방법에 관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신저자이면서 캠브리지대 세인스버리연구소의 사라 로빈스 박사는 “수박풀 꽃잎에 나타난 줄무늬 형태 주름은 꽃잎이 성장하는 동안 발생한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캠브리지대 버버리 글로버 식물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꽃잎이 팽창할 때 세포의 물리적 특성이 원인일 것으로 가정했다.
가설 검증을 위해 주름이 발달하지 않은 꽃봉오리 상태의 꽃잎을 떼어 특정 힘을 가했다. 물리적 힘으로도 패턴이 유도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외부 힘을 가했을 때 흰색 부위는 변화가 없었지만, 근위부에 줄무늬 형태 주름이 나타나기까지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주름은 성장을 끝낸 꽃잎에 생긴 주름과 비슷한 파장을 나타냈다.
놀라운 점은 꽃잎을 90도로 방향을 바꿔 힘을 가하니 힘 방향으로 주름이 형성됐다. 유전적으로 주름이 만들어지도록 코딩됐지만, 방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수박풀 꽃잎 근위부의 미세주름 실험 영상> ⓒ캠브릭지대학교 세인스버리 연구소
탄성계수가 서로 다른 층이 힘을 받아 형성
과거에 주름이 만들어진 방식에 관한 몇몇 해석이 있다. 세포의 큐티클(cuticle)이 과잉으로 생산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 2017년 중국 과학자는 큐티클과 왁스층의 서로 다른 확장 비율을 원인으로 삼았다.
하지만 캠브리지대 연구진은 기존 해석으로 수박풀의 경우처럼 부분에만 생성하는 주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의 해석은 수박풀 꽃잎의 이중 층에 힘을 가하면 각 층의 탄성계수가 달라 변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식물의 표피는 세포벽 위로 큐티클(cuticle)이 있고, 큐티클은 얇은 왁스층이 덮고 있다. 왁스층과 큐티클의 탄성계수 비율의 차이가 물결 형태의 파형. 즉, 주름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수박풀처럼 한 꽃잎에서 주름이 특정 부위만 있는 것도 상태가 다른 조직이 유전적으로 제어되는 상태라는 점이다.
로빈슨 박사는 주름 생성 원리에 대해 물리적 힘을 가할 시 줄무늬 형태 주름이 나타나는 ‘좌굴 현상’에 비유했다. 좌굴(Buckling)은 외부 힘을 받아 휘는 현상으로 건축에서는 불안정한 상태로 본다. 그러나 주름이 수분매개충을 유혹하는 도구인 만큼 오히려 이득이 되는 셈이다.
주름 무늬가 만든 무지개색…수분매개충 유혹
과연 꽃잎 표면의 주름이 꿀벌과 나비를 끌어들이는 도구가 될까. 300㎚의 단파장인 자외선, 파랑과 녹색 영역에 민감한 꿀벌은 무지개색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버버리 글로버 박사가 2007년에 사이언스지를 통해 보상이 주어지는 무지개색을 띠는 CD와 그렇지 않은 CD를 두고 꿀벌의 구별능력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꿀벌이 무지개색에 반응해 재방문율이 높은 것으로 관찰됐다.
또한, 남방오색나비(Hypolimnas bolina) 암컷은 푸른색과 자외선 반사율이 높은 무지개색을 가진 수컷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호주 맥커리대의 대럴 캠프 생물학 부교수는 ‘암컷에 짝짓기 구애를 하는 수컷 나비 간 종내 경쟁에서 무지개색 날개를 가진 수컷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세포를 갖는 수박풀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영국 BBC One 과학 기자로 활동하는 마티 좁슨 생물학 박사는 “수박풀이 개화를 유지하는 시간은 1시간 정도”라며 “시간 제약에 걸린 상황을 극복하는 전략적 무기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수박풀 꽃잎 근위부에서만 주름이 나타나게 된 기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식물과 수분 매개곤충 사이의 관계와 신호 작동 방식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했다.
한편, 지구상 속씨식물 50% 이상이 꽃잎에 줄무늬 주름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잘 알려진 식물로는 수박풀을 비롯해 정원식물로 유명한 튤립(Tulipa spp.), 작약(Paeonia lactiflora), 달맞이꽃(Oenothera biennis), 가자니아 크랩시아나(Gazania krebsiana), 유럽 가시금작화(lex europaeus), 멘첼리아 린들레야(Mentzelia lindleyi), 아도니스 티발리스(Adonis aestivalis), 놀라나 파라독사(Nolana paradoxa), 익시아 바리디플로라(Ixia viridiflora)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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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유혹 “꿀벌을 꾀는 특별한 전략 있다” – Sciencetimes -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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