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탐사 프로젝트, 다시 말해 ‘로켓 발사’라고 하면 다들 한 번으로 끝인, 맞춤형 대형 프로젝트라고 여겼다. 대표적인 예가 나사(NASA) 로켓 사업이다. 나사는 각 로켓 발사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퀀텀 점프(quantum leap)’나 ‘빅뱅(big bang)’을 위한 일회성 대형 투자 사업으로 취급했다. 나사의 패스파인더(Pathfinder) 미션 매니저 도나 셜리(Donna Shirley)는 그동안의 나사 프로젝트를 가리켜 “옛날 옛적의 위대하고 장엄한 미션”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다양한 미션을 진행해왔지만 각 미션이 연속성 없이 매번 독립적으로 진행돼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전 프로젝트 부품과 시스템 업데이트는 고사하고 다음 프로젝트에 재사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매번 새로운 미션으로 다시 구상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1992년 9월 발사한 나사의 마스 옵저버(Mars Observer) 미션에서 잘 드러난다. 화성의 지리와 기후를 탐사할 목적으로 설계된 마스 옵저버는 기획부터 개발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2000년대 기준으로 13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 출시까지 오래 기다리고, 많은 돈을 들여야 했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탐사선이 주 로켓 엔진을 발사한 다음 감속해 화성 궤도에 진입하기 사흘 전인 1993년 8월21일,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 비행 관제팀은 탐사선과 통신이 끊겼다. 결국 탐사는 실패로 끝났다. 어느 프로젝트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사는 실패한 경우는 물론 탐사가 성공했더라도 모든 부품과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탐사선 프로젝트들은 비용은 물론 시간 역시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민간 우주 기업들이 새로운 로켓 개발 패러다임을 선보이고 있다. 로켓 시스템을 ‘플랫폼’으로 보는 것이다. 재사용과 복제 가능한 부품과 설비를 제작해 일단 소규모 프로젝트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빠르게 확장해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최근 HBR 아티클에서 설명했듯이 이는 획기적인 비용 절감으로 이어져 우주개발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수요가 늘자 투자도 늘었다. 이런 민간 우주 기업의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플랫폼, 어떻게 작동할까?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의 기반은 플랫폼이다. 에어비앤비와 이베이, 우버도 마찬가지로 다면 비즈니스 플랫폼(MSP·Multisided platform)이라는 생각지 못한 발상으로 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에어비앤비는 호텔 객실을 소유하지 않고, 이베이도 물류 창고를 소유하지 않는다. 우버도 보유한 택시가 없지만 구매자와 판매자 등 다양한 관계자들의 거래가 대규모로 활발히 이뤄진다. 이 때문에 학계 일부에서는 플랫폼을 좁게는 "시장 형성으로 이어지는 저자본(capital-light) 디지털 시스템"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플랫폼은 단순한 디지털 현상이 아니다.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정립되고 여러 업계에서 플랫폼 모델을 활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자동차와 운송 업계에서 플랫폼 도입이 유독 두드러졌다. 다양한 파트와 서브 시스템, 인터페이스, 프로세스를 조합해 구조화하고, 이를 각양각색의 관계자와 표준과 거리가 먼 이례적인 요소들이 공유하도록 해 체계적인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운송의 컨테이너화를 살펴보자. 글로벌 운송 플랫폼에서는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와 크레인, 선박, 인공위성, 등대 등이 거래 대상이다. 거래 당사자들도 선박 회사, 항만운영사, 운송 업체, 규제 당국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미 높은 수준으로 균일화, 표준화된 컨테이너와 달리 선박은 아직도 규격 등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글로벌 운송 플랫폼 프로토콜이 있기에 질서정연한 거래가 가능해진다.
플랫폼의 구성 요소는 물론이고 그 구성 요소와 사용자 사이 인터페이스도 상당히 표준화됐다. 이 덕분에 사용자와 구성 요소가 쉽게 플랫폼에 진입할 수 있어 플랫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플랫폼이 커지면 그 기능성도 커진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자. 모바일 은행과 루트맵, 스트리밍 서비스, 전화 통화, 메신저 서비스 업체 등 다양한 관계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복잡하고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최종 결과는 놀랍다. 플랫폼이 활성화된 시장은 속도와 품질, 비용, 접근성 측면에서 더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가 느린 곳은 플랫폼을 도입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와해(disruption)된다.
민간 우주 기업의 플랫폼 도입은 어떻게 전개될까?
여기서는 스페이스엑스(SpaceX)만 다룰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우주 기업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스페이스엑스 창립 아이디어는 신흥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눈을 돌리면서 나왔다. 나사가 지난 30년 동안 매년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도 인간이 아직 화성에 발을 딛지 못했고, 그마저도 요원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우주인들을 달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머스크는 나사가 로켓을 한번 발사하면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이 느리다고 봤다. 물론 매 발사 뒤에 이것저것 깨닫고 배우는 게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백지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사는 부품 재사용은 고사하고 재사용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머스크는 “비행 후에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로켓단을 버리다니 비행이 끝날 때마다 보잉747기를 내다 버리는 소리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우주 비행 수요가 낮은 이유는 터무니없이 비싼 비용 때문“이라며… [중략] … 그런데 로켓을 재활용할 수 없다니 그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로켓을 재활용할 수 있다면 우주 분야의 민간 기업 참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봤다. 2021년 스페이스엑스는 재사용 로켓 100회 발사에 성공했다. 재사용이라고 하지만 현상 유지에 그치지 않고 애플의 운영체제처럼 수시로 성능을 개선한다. 스페이스엑스는 애플이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로 기능을 확장하듯 시스템과 로켓을 반복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이를 통해 스페이스엑스의 전반적인 기능을 늘려 이용자에게 선보인다.
로켓 개발을 플랫폼으로 접근하자 선순환이 생겼다. 모듈형 부품으로 로켓 시스템을 구성하면서 업그레이드와 재사용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에 따라 로켓 발사 횟수가 늘어났다. 사람들이 플랫폼, 즉 로켓의 부품을 업그레이드하고 재조합한 결과, 용도 변경과 규모를 계속 키울 수 있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자 더 많은 이용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다.
2009년만 해도 스페이스엑스가 성공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해 스페이스엑스가 유일하게 궤도에 진입시킨 제품은 180kg의 말레이시아 인공위성 라자셋(RazakSAT)뿐이었다. 하지만 2021년에는 31회 발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페이로드가 54만9054㎏에 달한다. 발사마다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2019년 6월 펠컨 헤비(Falcon Heavy) 로켓에 인공위성 24대를 각각 다른 궤도 3곳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펠컨 헤비에 탑재한 미션들에는 태양에너지만으로 추진력을 얻는 이른바 ‘우주 범선’ 민간 솔라 세일(solar sail)과 성간 비행을 위한 태양에너지 하베스팅, 나사의 심우주용 미니어처 원자시계, 미 국방부 우주 방사선 측정 위성, 우주 장례를 치르는 152명의 화장재 함 등이 포함됐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2022년 스페이스엑스는 40회 이상의 발사를 기록해 매출 약 20억 달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각 발사 비용이 나사 평균 발사 비용의 10분의 1에 그친다. 비용이 줄고 출시 속도가 빨라지면서 발사 빈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2년간 나사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 애널리스트로 일한 에드거 사파타(Edgar Zapata)는 스페이스엑스가 한 해 200개 이상 발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오늘날 스페이스엑스의 발사 빈도는 1964년 나사 황금기 시절의 발사 빈도와 거의 비슷하다. 당시 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정말 놀랄 만한 성과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따지면 400억 달러의 비용을 썼기 때문에 발사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1970년에는 나사 예산이 절반 가까이 삭감됐다. 1987년 나사의 발사 빈도는 연간 4회로 줄어들었다. 지금 같은 선순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스페이스엑스를 비롯한 여러 민간 우주 기업이 우주개발 상업화의 포문을 열었다. 이 기업들이 도입한 플랫폼 모델은 우주탐사만이 아닌 인류가 직면한 다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기후변화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지금, 당면한 위기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적응하는지에 따라 인류의 생존 또는 멸종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기존의 일회성 기획의 메가 프로젝트가 아닌 꾸준히 발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식 대안을 선택한 덕분일 것이다.
원문 | https://hbr.org/2022/11/a-platform-approach-to-space-exploration
아티프 안사르(Atif Ansar)는 영국 옥스퍼드대 사이드경영대학원의 시니어 펠로(Senior Fellow)이자 동 대학 스미스기업환경대학원 지속가능한 메가 프로젝트의 디렉터다.
벤트 플라이비에르그(Bent Flyvbjerg)는 옥스퍼드대 사이드경영대학원의 BT 교수이자 Major Programme Magnagement Emeritus의 학과장이며, 코펜하겐 IT 대학의 Villum Kann Rasmussen 교수 겸 학과장을 맡고 있다.
번역 노이재 에디팅 장선희
아티클을 끝까지 보시려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세요.
첫 달은 무료입니다!
[HBR]우주개발의 포문 연 '플랫폼 접근법' - 하버드비즈니스리뷰
Read More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