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한 동양인 남자가 작은 키로 갤러리 이곳저곳을 누비며 기계를 만진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갤러리에서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를 연 백남준(1932~2006)이다. 독일 현지 언론은 “젊은 한국인 예술가가 충격을 주려 했지만 결과는 김빠져”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그는 훗날 한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가 되었다.
인간 백남준이 어떻게 예술가로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아만다 킴의 연출로 제작됐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이 영화를 소장하며 지난달 29일 서울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 1관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백남준을 다룬 다큐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백남준의 깊은 예술적 맥락 보다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생전 백남준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가 남긴 글, 또 그를 기억하는 미술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백남준의 글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아 읽었다. 백남준과 협업했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 머스 커닝햄, 부인 구보타 시게코와 장조카 하쿠다 켄의 인터뷰도 나온다.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생전 백남준의 모습들이다. 첫 전시회를 열었을 때 집중 속에 긴장하는 표정, 언론의 혹평을 듣고 약간 씁쓸한 기색은 보이지만 아랑곳 않는 모습, 깊은 사색 중 깨달음을 얻고 새벽에 동료에게 전화를 했던 일화 등 불안한 가운데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을 갖고 꾸준히 나아갔던 그의 일생 단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일본에서 독일로 이주한 백남준은 1957년 음악가 존 케이지와 데이비드 튜더의 공연을 보고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케이지에게서 “자유로워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 자유를 백남준은 텔레비전에 적용한다. 케이지가 음악의 규칙을 파괴했다면, 백남준은 일방적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룰을 부순다. 브라운관에 자석을 갖다대 화면을 왜곡하고, 텔레비전 상자를 열어 개조해 관객이 영상을 조종할 수 있도록 바꾼다.
백남준의 실험은 미국 뉴욕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샬롯 무어만과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1969) 퍼포먼스, 또 거리에서 ‘로봇 K-456’이 걸어가도록 조작하는 모습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평생 시달렸던 백남준이 미국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 또 비가 새는 낡은 집에 살아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내 덕분에 작품과 기록을 살릴 수 있었던 일화도 나온다. 백남준은 “만약 이 때 모든 것을 잃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 따르면 가난함에 시달리는 그를 구해준 것은 1974년 시작된 ‘TV 부처’ 연작이다. 시게코는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백남준이 갑자기 남은 돈을 털어 불상을 사와 당황했다고 말한다. 백남준은 불상을 텔레비전 앞에 세워, 브라운관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는 부처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고, 이것을 각국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된다. 1950년 한국을 떠난 뒤 34년 만인 1984년 귀국한 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누나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부모님의 묘소를 찾는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읽힌다. 영화 일반 공개 일정은 미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간 백남준 조명한 다큐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 미리보니…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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